2008년 05월 13일
<감상평> Fantastic fortune(판타스틱 포츈)


1998년도에 발매된 오토메 게임의 고전. 국내에 정발되어 게임피아 번들로 제공된 바 있고 EBS 성우들의 국어책 읽기를 만끽할 수 있었던 추억의 게임이다. 현재에도 주얼로 팔리는 몇 안되는 게임. 들여올 당시의 패키지 가격은 25000원으로 기억하나, 잘 안 팔렸는지 9900원으로 하락하여 동네 서점에서 팔렸다. 오토메 게임 역사에 획을 그었으며, 나이 좀 들었다 싶은 사람들은 이 게임으로 오토메게에 입문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금 세대에서도 입문작으로 추천할 만큼 잘 만들었다.
제작사는 후지쯔. 에베루즈 시리즈의 워랜드 세계관과 연계되는 작품이나 기존 시리즈와 타겟이 워낙 달라 게임 간의 연동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조금 안타깝다. 그러나 화사하고 따사로운 중세풍의 분위기는 확실히 계승했다. 주인공이 3명이라는 요즘 게임에서도 보기 드문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는데, 주인공마다 확실한 개성을 부여한 점이 점이 획기적이었다. 세 주인공들은 공주, 기사견습생, 차원이동한 일본의 여고생 등 직업, 입장, 성격이 모두 달라 같은 캐릭터를 공략해도 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이 점이 커플링에 목마른 여성 게이머들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어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발매 후 10년 된 지금 생각해봐도 캐릭터의 개성과 매력의 표현 면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시나리오 자체의 질은 지금 기준에서도 평작 이상(만약 오토메 게임계가 지속적으로 명작을 배출했다면 평가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두서없이 쓰여진 티가 나지만 크게 흠잡힐 만한 정도는 아니다. 플레이시간이 길지 않아서 반복 플레이에 부담이 없고 공략 캐릭터도 7명이나 되니 게임 전체의 볼륨도 작지 않다. 적지 않은 캐릭터 수에도 불구하고 소홀하게 만들어진 루트가 없다는 점도 높이 살만한 요소(가젤 루트는 좀 날림이긴 했다). 여러 모로 시대를 앞서간 게임이었다. 객관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게임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출시된 지 10년이 넘도록 이 게임보다 질적으로 나은 오토메 게임이 별로 없다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캐릭터 면에서도 이것저것 속성을 섞어서 어설프게 만든 게 아니라, 한 캐릭터당 하나의 속성으로 밀어붙여서 취향대로 편하게 몰두할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 캐릭터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성을 밀어붙이기보다 이상형적인 면모를 어필함으로써 호감을 산다. 깊은 정은 들기 어렵지만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쉬운 캐릭터메이킹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호감만 주려다 보니 임팩트 있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엔딩을 보고 나면 쉽게 인상이 흐려지는 경향이 있으나, 적어도 플레이하는 동안만은 여심을 흔들기엔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래픽 또한 지금 내놔도 괜찮은 수준. 어째 유우키 아즈사의 현재 그림체보다 얼굴 조형이나 색감 면에서 더 낫다고 생각되는 건 나뿐인가? 의상 센스는 지금 봐도 충격적인 옷이 몇 벌 있지만(가령 실피시의 형광연두색 하복이라던가) 유우키 아즈사가 디렉터를 맡은 후속작들에 비하면 양호하다.
단점은 게임 진행이 지루해 CG 컴플리트가 쉽지 않다는 점. 하도 옛날 게임이다 보니 스킵 기능을 지원하지 않으며(워낙 동시공략이 쉬운 게임이다 보니 동시공략 세이브 파일을 만들어 놓으면 재플레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글판에서는 2월 발렌타인 이벤트에서 진행이 안 되는 버그가 있었다. 패치의 개념을 전혀 몰랐던 어린 나는 무한 로딩을 반복하며 자괴감에 빠져 있었지. 어렵게 패치를 구하고 나서도 CG 수집률에는 진척이 없었다.
이 게임, 육성 시뮬레이션의 필수인 '집에서 휴식' 커맨드가 없다. 오로지 공략대상들과 수다를 떨어야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플레이 기간이 3월 말까지인데, 길어도 11월에는 공략에 필요한 모든 능력치와 호감도가 다 채워진다. 최대 1월달까지 볼만한 이벤트 다 보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자유행동->외출->내 방의 무한 클릭 노가다를 해야 한다. 각 캐릭터별 엔딩을 보고 접으려는 사람들은 최장 1월달까지 엔딩을 보고 끝낼 수 있지만, 나처럼 100%에 집착하는 사람은 인내심을 적잖이 시험받게 된다. 적어도 난 판포를 플레이하면서 CG를 다 모은 기억이 없다. 더군다나 세이브/로드도 1주일에 한번밖에 하지 못해서 일상 플레이도 좀 번거로운 감이 있다.
또, 반복 플레이에 싫증을 잘 느낄 유저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다. 주인공을 바꾸어도 대사가 달라질 뿐 시나리오의 틀은 크게 바뀌지 않다 보니(기껏해야 다른 주인공 시점에서는 밝혀지지 않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밝혀지는 정도지만, 안다고 해서 공략대상에 대한 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크게 감흥가는 것도 없다) 점점 캐릭터에게서 받는 인상이 흐려지고 감흥이 사라져 신선함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익숙한 것은 쉽게 진부해지는 법이다.
한글판 더빙에 대해 말이 많은 편인데 발매년도를 감안하면 대체로 그럭저럭 들을 만한 수준이다. 개인적으로는 세리오스 성우와 키엘 성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모두가 공인하는 미스캐스팅은 이리스와 레오니스 성우. 둘 다 캐릭터는 충분히 매력적인데도 불구하고 성우 때문에 인기를 좀 깎아먹었다. 특히 이리스 성우의 경우 외모와 목소리의 시너지 효과 때문에 사람에 따라 백합 무드를 느낄 수 있는데, 이걸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레오니스의 경우엔 메인 히어로 3인방에다 미중년이라는 설정 때문에 캐릭터 선호도 세 손가락 안에는 언제나 들어있었으나 목소리에 불만을 토로하는 의견이 꾸준히 이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리스보다 더 공략하기 버거운 목소리였다. 남자들이 로리를 좋아하지 어린애를 좋아하는 게 아닌 것처럼, 여자들도 오지를 좋아하지 아저씨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요즘에는 모르는 사람이 꽤나 많던데, 다른 오토메 게임에 비하면 그나마 구하기 쉬운 편이니 관심 있는 사람은 구해서 해보기 바란다. 캐릭터의 모에 속성을 스탠다드로 살렸다는 점에서 거쳐볼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XP 호환이 되는 버젼과 안 되는 버젼이 따로 있는데, 비스타에서 될지는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팬들 사이에서 3명의 주인공 중 진 주인공이 누구인가가 꽤나 논란거리였다. 개인적으로는 디아나라고 생각한다. 디아나 진 엔딩을 봐야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째 유우키 아즈사가 제일 밀어주는 커플은 세리오스×디아나인 것 같은데 어째 제일 텍스트 상에서 정성이 들어간(최소한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쪽은 키엘×메이란 말이지…….
아포크리파/제로의 알렉도 그렇고, 유우키 아즈사는 왜 자신이 가장 밀어주는 캐릭터와 커플의 일러스트를 예쁘게 그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애들 생긴건 그게 그건데 미인 설정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예쁘다고 설정된 애들만 예쁘게 그리는 듯.
후속작인 판타스틱 포츈 2는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불편한 시스템과 연애 게임으로서 캐릭터 모에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좋은 평가를 별로 못 받았다. 2가 특별히 떨어져서라기보다 1에 비교해서 그다지 나을 게 없는 시스템에(전작보다 덜 지루한 건 인정한다만, 체감상 오히려 더 불편하다고 느꼈다) 캐릭터의 조형조차 전작에 미치지 못한다. 어차피 전작과는 세계관을 제외하고 이어지는 설정이 없으므로, 전작에 대한 향수를 가지신 분들께는 권하지 않는다.
# by | 2008/05/13 14:34 | 오늘의 乙女心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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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츠3대 연애게임, 에베르쥬 & 트윈즈스토리 & 판타스틱포츈 전부 해봤지만
개인적으로 판포쪽은 여성향게임이라고 해도 저로서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주로 좋아한 캐릭터는 "메이" 인데 그 이유가 바로...
.............컴파일사의 뿌요뿌요의 아루루를 닮았기때문이엇죠(...)
여담으로 일본판 성우진들의 화려함에 국내판은 완전히 봉인해버렸습니다
(일본판이 있기는한데 언젠가 소개를 해봐야겠군요(...))
글 잘 보고갑니다~